2023년 3월 일본출판인프라센터(JPO: Japan Publishing Organization For Information Infrastructure Development) 이사회에서, ‘찾아가기 쉬운 도서지원센터(Accessible Books Support Center (ABSC)’ 설립을 추진해 온 ABSC준비회가 드디어 ABSC라는 정식 명칭을 달고 JPO 조직의 한 부문으로 승인되었습니다. ABSC 전용 웹사이트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ABSC는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더 많은 이들이 출판물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출판계와 장애인의 가교가 되고자 합니다. 이에 ABSC의 설립 배경과 역할, 앞으로의 활동, 그리고 ABSC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2019년 6월에 시행된 <시각장애인 등의 독서환경 정비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독서 배리어프리법 ’)에 따라 2021년 1월 일본서적출판협회(서협)에 ‘독서 배리어프리법 대응을 위한 Accessible Books위원회(AB위원회)’가 발족되었습니다. AB위원회는 검토를 통해JPO와 협력해 독서의 물리적 장벽 해소에 나설 출판사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후에 ABSC)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2021년 6월 JPO 총회에서 ABSC 설립 준비가 승인되었고, 9월 22일 제1차 ABSC 준비위원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참고로 JPO의 ABSC 준비회가 출범한 이후에도 서협의 AB위원회는 ABSC 준비회에 동참하며 협력해 왔습니다.
ABSC의 활동 목적은 아래 조약 및 법률의 목적이기도 한 ‘독서 장애인의 독서환경 조성,’ 그리고 ‘출판사(업자)의 장애인 접근성 향상 지원’에 있습니다.
2013. 6.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의 해소 추진에 관한 법률 (이른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16. 4.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2019. 1. 일본에서 마라케시 조약 발효 (2013년 WIPO가 채택한 전 세계 독서 장애인의 독서환경 조성을 위한 조약)
2019. 6. 시각장애인 등의 독서환경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 (이른바 ‘독서 배리어프리법 ’) 시행
출판사업자는 자신이 발행한 출판물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읽고 활용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여러 장애로 인해 독서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ABSC의 역할은 그러한 분들의 ‘어려움’을 줄이고 출판물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출판계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출판의 장애인 접근성 대응은 사업성이 떨어진다거나, 장애인 지원 자원봉사자가 요구하는 텍스트 데이터 제공은 데이터 유출 위험 때문에 어렵다는 등의 의견이 있습니다. ABSC는 이러한 의견도 받아들이면서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접근성 대응의 사업성 문제에서, 이를 읽기 어려운 사람에 대응한다는 측면으로만 보면 비즈니스로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접근성 대응을 오히려 시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로 보면 어떨까요?
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의 흔한 요청 중 하나가 ‘어려운 한자에 음독을 달아달라’ ‘낭독 자원봉사자가 발음하기 쉬운 단어 선택 등 문장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청사항은 편집자가 조금만 더 배려하면 해소될 수 있고 비장애인 독자층의 확대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또한 출판사가 쉽게 할 수 있는 대응 중 하나가 전자책의 TTS(Text To Speech: 기계음성 자동 낭독기능) 기능의 활용입니다. 이 TTS 기능은JPO 내의 출판정보등록센터(JPRO: Japan Publication Registry Office)가 일반 대상으로 공개하는 종합도서카탈로그 Books에 전자책 정보와 함께 표시될 예정입니다. Books의 정보가 충실해질수록 일반 사용자들에게 널리 이용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 사용자 중에도 ‘이 출판물은 전자책으로 읽어볼까’ ‘이 출판물은 TTS로 들어볼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지 모릅니다. 사회의 고령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즉 전자서적화와 TTS 기능은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독서 방법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이책뿐 아니라 전자책 시장을 확대하고, 나아가 제작판매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출판 비즈니스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작품의 계약조건에 따라 다르겠으나 텍스트 데이터를 제공받으면 점자 번역서, 음역 도서 등을 제작하기가 훨씬 수월해져 자원봉사자 등 제작자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가지 방안으로, 출판물 판권페이지에 텍스트 청구권을 인쇄해 두어 이를 통해 텍스트 신청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출판사는 신청자가 해당 출판물의 구매자임을 파악하고 자체적으로 텍스트 데이터 제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출판물이 자연발생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안심하고 텍스트를 제공해도 되겠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ABSC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을 뒤에 말씀드릴 ABSC 보고서 등을 통해 실례와 함께 소개하고 이해를 넓힐 수 있다면, 출판의 장애인 접근성 대응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출판물 장애인 접근성의 환경 정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ABSC는 출판사, 저자, 자원봉사자 등 지원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출판의 장애인 접근성 대응을 기존의 출판의 역할을 더욱 넓히는 관점에서 설명과 토론의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그렇게 이해와 공감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 자체에 활동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출판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출판사, 그리고 그 활동을 신뢰하는 장애 당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판 장애인 접근성은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서장애인의 현실에 대한 배움과 고민이 필요하다고ABSC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심리적 갈등(거리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떤 접근 가능한 서비스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비장애인에게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모처럼 서비스(기회)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 이상을 요구하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여기서 거절하면 모처럼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 다음 번엔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장애인에게 ‘걱정이 되니 말을 걸고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지만 불필요한 배려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해야 될 텐데 주변에 배려가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까’ ‘솔직히 좀 귀찮지만……’ 등의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물론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이와 같은 망설임, 주저함, 꺼림칙함, 참아야 한다는 생각, 걱정, 배려, 불필요함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심리적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갈등 때문에 좋은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하거나 개선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아까운 일이지요.
척수성 근위축증 당사자인 마르셀 누스는 “우리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비장애인의 의식, 태도, 말 또한 장애인에게는 정신적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과 장벽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 알아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장애인 접근성 대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리적 갈등은 결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과 젊은이, 회사의 상사와 부하직원 등 대인관계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리적 갈등과 장벽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서로 만나는 기회를 늘려 익숙해지는 방법도 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과 글을 통한 이해와 공감, 즉 성숙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 사회는 시각과 음성 소통을 전제로 생활과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 전제에 이미 장애인에 대한 장벽이 있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볼 수 없는 것, 귀가 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들을 수 없는 것이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장벽을 깨닫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장애인과의 교류를 쌓음과 동시에 출판물을 통해 지식과 상상력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출판계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ABSC는 이를 다양한 시책을 통해 돕고자 합니다.
ABSC는 출판계와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 간의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해 ABSC 보고서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ABSC 준비회 보고서>는 2022년 6월 창간호, 2023년 1월 제2호를 이미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목적은 출판사, 저자, 인쇄업계 종사자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히고, 장애인 당사자, 자원봉사자, 지원단체에는 출판업계의 노력을 더 알리는 것입니다.
창간호에는 10년 전부터 서적 판권 표시 부분에 텍스트 데이터 청구권을 넣어온 출판사의 사례를 소개하고, 청구가 도착했을 때의 회신 양식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점자책·오디오북을 발행하는 출판사를 방문해 점자 번역 현장을 취재하고, 텍스트 데이터가 제공되면 지원단체가 점자책 제작을 더욱 빨리 할 수 있고 제작자의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점을 출판사에 알리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2호에서는 일본 국내의 ‘시각장애인 등’의 당사자 현황에 대한 통계 데이터와 구체적으로 접근 가능한 출판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등의 조사 결과를 게재했습니다. 또한 텍스트 데이터를 제공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출판사의 사정을 다루고, 그런 출판사에 실제 사례와 팁을 제공하는 기사, DAISY 컨소시엄과 사피에 등의 지원 단체 취재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3호부터는 출판사가 정확한 텍스트 데이터 제공에 시간이 걸리는 현 상황에서도 장애인 접근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TTS 기능의 대응과 개선을 위해 출범한 TTS 워킹그룹 의 진행 상황도 보고할 예정입니다. 또 시각장애뿐 아니라 독서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장애에 대한 비장애인의 이해를 돕는 기사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JPO가 운영하는 JPRO 는 2023년 4월 현재 약 2600개 이상의 출판사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각 출판사가 전송한 서지정보, 표지, 판촉정보, 유통정보가 통합 처리되어 매일 9시, 15시에 공개됩니다. 등록된 타이틀 수는 360만 개 이상, 매일 수백 종의 신간 정보가 누적되어 유통사, 서점, 도서관에서 출판물의 운송 효율화, 예약 판매, 사입 검토, 도서 선정 등에 활용됩니다. 2021년 11월부터는 잡지 정보도 등록할 수 있게 되어 도서 정보와 함께 포털사이트 Books PRO를 통해 서점 및 도서관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온라인 서점이나 도서 정보 사이트 등에서도 서지정보의 원천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JPO는 이 JPRO 정보를 바탕으로 일반 독자들이 기본적인 서지 정보를 볼 수 있는 Books 를 제공합니다.
이 JPRO 등록 정보에 장애인 접근성 정보를 추가해 출판사에 일일이 문의하지 않아도 Books에서 어떤 책을 어떤 매체로 읽을 수 있는지, 전자책 버전은 TTS를 지원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재 개선 중입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장애인 접근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장애인들이 실제로 사용해보며 개선을 거듭해 나갈 예정입니다.
앞으로 출판에 있어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출판업계 신입직원용 교육 교재에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지식을 추가하는 것일 듯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는 출판인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일본출판학회 등과 협력해 출판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출판 문헌의 장애인 접근성 관련 기술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등의 검토를 요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종래의 출판 개념에 대한 정의 등도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ABSC는 출판 장애인 접근성 향상에 유용한 정보를 아카이브로 구축하고자 합니다. 아카이브는 다음과 같이 문서 기록, 사례 기록, 자료·정보의 세 분야로 구성됩니다.
지금까지 ABSC의 설립 배경과 역할, 시책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출판 장애인 접근성 향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이, 성별, 국적, 빈부, 다양한 차이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사회, 편안한 독서 환경을 고민하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업계, 관광업계, 의류업계 등 다양한 업계도 이 과제에 직면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출판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ABSC는 이러한 과제를 마주하고, 모든 사람이 출판물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배워 나가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